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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거리 두는 사우디… 떫지만 관계 재검토 나서는 미국
사우디, 중동 국가들과 관계 강화하며 유가결정 등에서 탈서방 행보
중국을 사이에 두고 손잡은 사우디와 이란
3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 보좌관(왼쪽)이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가운데 두고 이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측근인 알리 샴카니 최고국가안보회의(NSC) 의장(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탈미국’ ‘탈서방’을 꿈꾸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경제·군사·외교적 구심력에 휘둘려온 과거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확연해 보인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탈석유’와 무관하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른바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통해 석유의존 경제에서 벗어나려는 중인데, 여기에는 중동 내 자국의 맹주 위상 확립과 중동 평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런 행보에 대해 과거처럼 비난하거나 ‘힘’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 작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지구촌 역학관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OPEC 감산 결정에도 사우디가 ‘80년 파트너’라는 미국 =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가 대규모 추가 감산을 결정하자 미국은 4월 3일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이를 비판하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80년 전략 파트너’로 칭하는 등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OPEC 플러스는 전날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추가 감산을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는 5월부터 원유 생산량을 하루 50만 배럴씩 줄일 예정이다.
백악관은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결정에 대해서는 “근시안적 결정”,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고유가에 대응하기 위해 ‘왕따’ 공약을 뒤집고 지난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를 전격 방문,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지목됐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주먹 인사’까지 했는데도 사우디아라비아가 당시 사실상 뒤통수를 치자 발끈한 것이다. 여기에는 OPEC 플러스 감산 결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사실상 도왔다는 판단도 반영돼 있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백악관의 이번 반응은 이전에 비해서 대응 수위가 상당히 낮은 것이다. 이와 관련, 커비 조정관은 브리핑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80년간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전략적인 파트너”라면서 “우리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서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에 항상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략적 파트너십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함께 계속 협력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면서 예멘 휴전, 이스라엘 문제, 사우디아라비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의 사례를 거론했다.
백악관은 나아가 지난해 10월 OPEC 플러스 감산 결정 때 밝혔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재검토 문제도 통상적인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은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가 ‘후과’를 겪게 될 거라고 했지만, 지금까지로 볼 때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규제하겠다던 약속을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우디, ‘미국의 적들’과 관계 회복 속도 =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벗어나 독자 외교의 길을 걷고 있다. 서방의 제재를 받는 중동 국가들과 관계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점이 대표적이다. 아랍연맹(AL) 정상회담 개최국인 사우디아리비아는 회담에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초청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이란과는 조만간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이어 정상 회담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랍연맹 정상회담은 오는 5월 19일 사우디에서 열릴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아랍연맹 측은 시리아 초청 계획과 관련한 확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시리아는 2011년 내전 발생 후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에서 퇴출당했다.
아랍권과 서방 국가들은 반정부 시위에 대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강경 진압을 내전 원인으로 지목하고 내전 초기에는 반군을 지지했다.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알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란 같은 우방국의 군사 지원으로 국토 대부분을 다시 장악했으며, 아랍 국가들은 최근 수년간 그와 관계 회복 움직임을 보여 왔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해 3월에 이어 이달에도 알아사드 대통령을 초청하는 등 시리아와 관계 회복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 2월 튀르키예(터키) 강진 후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이 원조에 나서면서 해빙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최근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는 사우디-시리아 간 접촉을 가속했다. 알아사드 정권은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앞서 3월 23일 시리아 측과 관계된 소식통은 “양국이 4월 하순에 돌아오는 이슬람 명절인 이드 알-피트르에 대사관 재개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로이터>는 시리아가 아랍연맹에 초청된다면 알아사드 정권의 고립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전방위 제재를 받는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는 회복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모하메드 모카베르 수석 부통령은 3일 기자회견에서 “사우디 국왕이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을 리야드로 초청했으며, 양국 정상의 만남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모카베르 부통령은 라이시 대통령이 사우디 국왕의 초청을 받아들였으며 이란은 양국의 협력을 확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양국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수일 내에 사우디 외무장관과 만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외신들은 사우디가 중국과 밀착함과 동시에 역내 국가들과 갈등 해소에 나서면서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 거리를 두는 외교 노선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탈석유’ 추진하며 중동 ‘평화 무드’ 앞장 = 사우디아라비아는 ‘탈석유’ 정책을 진행하면서 중동 내 오랜 ‘적’들과 화해하고 있다. 이는 안보 분야에서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인접 국가들과 외교 관계 재건을 통해 외교·안보 지형에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비즈니스·문화·관광 강국으로 전환을 꿈꾸는 사우디에 중동의 긴장 완화는 필수 요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과 밀착으로 안보를 보장받아온 사우디의 외교 전략 변화는 2019년 아람코 원유시설 피습 이후 급물살을 탔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 후티(자칭 안사룰라)는 2019년 9월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석유 시설을 무인기와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로 인해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한동안 절반으로 줄었다. 사우디는 예멘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원했다.
현지 외교관과 분석가들에 따르면 이 사건은 사우디가 더는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안전보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리야드에 주재하는 한 외교관은 AFP 통신에 “당시 사우디는 미국 행정부가 (공격과 관련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우디 관리들은 ‘네옴시티’와 북부 예술 중심지 ‘알울라’와 같은 거대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안전이 필수적”이라면서 “이들 도시에 미사일이 한 발이라도 떨어진다면 관광이나 투자는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사우디는 주변국들과 외교를 통한 화해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사우디는 튀르키예(터키), 카타르 등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2021년부터 역내 최대 라이벌인 이란과 대화를 시작했고, 올해 3월 양국은 중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시리아와도 화해를 시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중동 정치 전문가 압둘아지즈 사게르는 로이터 통신에 “사우디는 경제 개혁 프로젝트인 ‘비전 2030’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 중동 내 무력 충돌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사우디의 한 관리는 외신을 통해 “우리의 비전은 번영하는 중동”이라면서 “지역 전체의 발전이 없다면, 사우디의 성취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외신들은 미국에만 의존하는 안보에 불안을 느낀 사우디가 이란과 갈등을 완화하고 외교·안보 파트너를 다각화했다고 진단했다. 사우디는 최대 원유 수출국인 중국과 경제는 물론 안보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했다. 최근에는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도 부분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미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빌랄 사브 국방·안보 국장은 “사우디는 자국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이 보호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는 이란과 관계 개선의 중요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로 오랜 기간 친미 대 반미 대립 구도를 보였던 중동 정세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함 카멜 유라시라그룹 중동 담당은 “사우디는 광범위한 지역 안보 환경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지정학적 재설정을 시도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


